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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축구 뉴스

펠레, 암 투병 끝에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다

by 오늘도 행복하세요 2022.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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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를 한명  꼽아야 한다면 10중 8~9는 이 남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 축구선수를 넘어 20세기 최구의 운동선수로 꼽힌 이 남자,

- 1958년 17세의 나이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월드컵 우승 3회이라는 대 기록을 보유한 남자.

- 20년간 선수생활을 하며 1280골이라는 기록을 남긴 괴물!

- "이 남자는 곧 축구이며, 축구는 곧 이 남자다." (마리오 지갈로 감독)

축구황제(O Rei) "펠레"가 세상을 떠났다.

 

1.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나이 불과 17세! 

1956년 9월, 만 15세의 나이로 친청팀 산투스에서 대뷔한 펠레! 1년만에 1군 맴버로 승격하며 정착한 펠레는 16살이라는 아주아주 어린 나이에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해 7월, 브라질 국기를 가슴에 달고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했다.

1958년에 열린 스웨덴 월드컵, 그는 이미 브라질의 간판스타가 되어 있었고,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가 대표팀에 승선 했을 때, 이미 다른 공격수들이 주전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고, 감독 역시 그를 적극기용하지 못헀다.

그러나 스웨덴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잉글랜드와 무승부를 거둔 이후 브라질 전 국민의 민심은 펠레를 외쳤고, 결국 조별리그 3차전 소련과의 경기에서 월드컵 대뷔전을 치뤘고, 이후 웨일즈와의 8강전에서 대회 역사상 최연소 득점자(17세 239일)의 명예를 차지했다.

4강에서 강호 프랑스를 만난 브라질과 펠레는 어느정도 고전을 예상했으나, 그것은 완벽한 기우였다.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프랑스의 수비를 무너뜨린 펠레는 대회 역사상 최연소 헤트트릭(17세 244일)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냈고, 팀은 5대 2로 프랑스로부터 대승을 거두었다.

개최국 스웨덴과의 만난 결승! 월드컵 결승이라는 큰 무대 역시 펠레라는 야수를 가두기에는 좁은 우리였다. 그는 보란듯이 스웨덴 수비들을 괴롭혔고, 뛰어난 볼컨트롤 실력과 강력한 슈팅으로 두 골을 작렬! 그렇게 펠레는 전 세계인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 예상치 못한 시련, 부상 그리고 승리

스웨덴 월드컵이 끝이나고, 전 세계가 펠레를 주목했다. 1962년 스웨덴 월드컵이 열리기까지 4년 연속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그는 레알마드리드의 "금빛 화살" 디 스테파노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라있었다. 안타깝게도 디 스테파노가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전 세계는 1962년 칠레 월드컵이 펠레의 황제 대관식이 되리라 생각했다.

세계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 펠레는 멕시코와 펼쳐진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1골과 1도움이라는 MOM급 활약을 펼쳤고, 팀은 2대0 승리라는 편안한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안타깝도 체코와 펼쳐진 조별리그 2차전, 브라질의 간판스타 펠레가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로인해 그는 더이상 칠레월드컵에서 뛸 수 없었고, 벤치에서 팀원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다행이도 브라질에는 다른 월드클라스 선수들이 있었고(가린샤 등), 묵묵히 응원하는 펠레의 응원을 얻어 힘을 낸 동료들은 칠레월드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안타깝게도 이후 1966년, 영국월드컵 당시 펠레는 또 한번 선수들의 과격한 태클과 반칙에 의해 부상을 당했고, 부상의 여파 속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1966년 대회에서 많은 고생을 한 펠레는 "다시는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겠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남기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자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안타깝게 국민스타를 잃을 수 없는 브라질 국민들은 펠레의 복귀운동을 펼쳤고, 국민들의 요청에 못이겨 펠레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대회에서 MVP와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며 축구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마쳤다. 국민들의 염원과 그의 변심 덕분에 "역대 최고 선수!"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차지할 수 있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 끝이 나고, 그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대표팀과 아름다운 이별을 고했고(불과 그의 나이 만 30세), 1974년 월드컵을 앞두고 국민들이 다시 한번 펠레의 복귀운동을 추진했으나, 펠레는 단호하게 결심을 한 듯 다시 한번 국가대표팀으로의 복귀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펠레가 없는 브라질 대표팀은 요한 크라위프의 네덜란드를 만나 아쉽게도 4위를 차지했다. 그 후 그는 조용히 미국으로 건너가 37세의 나이로 축구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3. 펠레??

펠레는 그의 본명이 아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시멘토(Edson Arantes Do Nascimento)"이다. 에디슨과 같이 위대한 사람이 되라는 그의 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이름이다. 정확한 시기와 유레는 알 수 없지만, 어느순간부터 그는 "펠레"라고 불리게 되었고(아마 그가 좋아하던 축구선수 "빌레"와 유사한 발음이 붙은것이 아닐까?), 지금에 이르러 "펠레"라는 이름은 "황제"를 의미하는 대명사로 여겨진다. 펠레 자신도 펠레라는 이름이 "하늘에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표현했다.

 

4. 펠레가 찍었다고? 그럼 반대로 걸어!

축구 황제 펠레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승리팀이나 우승팀을 잘 맞추는 것은 아닌가보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 그는 브라질의 우승을 점찍으며 우승 라이벌로써 강세를 보일 팀으로 아르헨티나, 독일 등을 선택했다. "브라질과 아프리카팀의 결승을 보고싶다."는 그의 바램과는 달리 세 팀은 결승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펠레가 찍으면 반대로 가라! 문어가 낫다! 라는 밈이 생겨나기도 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건?

그가 축구황제라느 사실이다. 사람은 언제나 이별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비록 그의 플레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미소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럼 이만 안녕......

출처 펠레 공식 인스타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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